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죽음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긴 한 것일까. 죽음은 인간 역사 동안 인간들이 전혀 알 수 없던 유일한 미지의 세계이다. 그 누구도 죽음 이후를 알 순 없다. 죽음 그 이후를 알 순 없더라도, 우린 모두 죽게 된다. 만약에 죽음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를 쓴 모니카 렌츠는 스위스 장크트갈렌 종합병원에서 17년간 1000여 명의 임종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이다.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모니카 렌츠는 주로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 인가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과연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 고통 없는 죽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맞이하는 죽음? 아니면, 하고 싶은걸 다 하고 맞이하는 죽음? 모니카 렌츠는 좋은 죽음이란, 성공한 삶과의 이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성공한 삶과의 이별이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본인이 동의할 수 있을 때 성공한 삶과의 이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서 절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임종 준비 또한 필요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겐 온갖 불안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주위에서 그 사람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모니카 렌츠는 좋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존엄'이라는 개념 또한 설명한다. 존엄은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편안하게 수용하는 것. 이게 바로 존엄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내 것이었듯이, 죽음 또한 내 것이라고 수용하는 것. 이를 통해 존엄이 완성될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옴에 따라 갖고 있던 삶에 대한 집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거부 반응이 전부 사라지고, 온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지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죽음은 누구에게도 두려운 하나의 '관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 누구도 그 관문을 피할 순 없다. 결국 삶의 끝에선 넘어야 하는 관문인데, 이를 마냥 두려워하고, 걱정할 순 없을 것이다. 그 죽음을 어떻게 편안하게 맞이할 것인지를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는 잔잔하게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환자의 동의 없는 '존엄사'는 존엄하지 않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좋은 죽음'에 대해 참 많이 생각해봤던 것 같다. 과연 좋은 죽음이 존재할 것인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맞는 죽음은 정말 '좋은 죽음'인 것인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긴 참 어려운 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지만, 그 어려운 '죽음에 대한 동의'를 못해서 죽음 앞에서 그렇게 힘들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존엄' 또한 존재한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존엄사' 역시 환자의 동의가 있어야 진짜 '존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환자 동의 없이 행해지는 '존엄사'는 환자로 하여금 좋은 죽음으로 이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일종의 '살인'이라고 생각이 된다. 


생소하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죽음을 누구보다 더 가까이서 지켜본 모니카 렌츠의 책  <어떻게 죽음을  마주할 것인가>.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과, 그들의 마지막 말들을 수록해 놓아서 더욱 흥미로웠다. 평소에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해준 모니카 렌츠에게 더욱 감사하다. 

며 칠간 읽던 책을 비로소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책을 덮고 난 후, 난 꽤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었다. 과연 난 제대로 살아온 게 맞을까. 너무 안일하게, 편안한 길만 택해서 걸어오지 않았나 하고 말이다. 스탠 비첨이 쓴 <엘리트 마인드>는 내가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일종의 '인생 지침서'가 되었다.


< 엘리트 마인드>를 쓴 스탠 비첨은 미국의 저명한 리더십 컨설턴트이자 스포츠 심리학자이다. 다년간의 심리상담을 통해 최고의 엘리트의 사고법과 한 사람의 잠재력을 깨우는 방법을 <엘리트 마인드>를 통해서 제시한다. 이 책을 다 읽은 순간, 난 이 책을 접하기 전의 나와, 후의 나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동기부여, 성공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책이 어떤 말을 하길래 이렇게 극찬을 하는 것인지 궁금할게 분명하다. 이 책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자세히 묘사한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 

스 탠 비첨은 과감하게 개인의 성과는 100%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의 무의식이 우리 평소 생활 태도나, 생각을 지배한다고 한다. 따라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부정적인 신념(무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평상시 작업 효율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부정적인 신념을 바꿔야 한다.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진찰해서 자신이 부정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억지로라도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난 최근에 자세히 알아봤던 아들러의 심리학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억지로라도 노력하는 것.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진단한다는 점은 성공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찌 보면 당연한 공통점이라고 느껴진다. 


미래는 우리가 꾸며낸 허구

우 리는 미래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도전을 망설이고, 한 번 오는 인생 기회를 눈 앞에서 놓쳐버리곤 한다. 이에 대해 스탠 비첨은 미래는 그저 우리가 꾸며낸 허구일 뿐이고,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운이 좋다',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신념을 드러낸다. 앞서 설명했듯이 정신이 개인의 성과를 100%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밝은 태도가 좋은 업무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를 그저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해야 한다. 승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승리가 오지 않는다. 자신감을 갖고 승리를 '기대'하는 자에겐 좋은 결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패를 허용하라

실 패가 두려워서 목표를 낮게 설정하고, 그 목표만 이루고 행복해한다면, 이는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자고로 목표를 세울 때는 죽을 각오를 하고 세워야 한다고 스탠 비첨은 '무서울 수도 있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 성공이란 백 번 넘어지고 백 한 번째 일어서는 것이다. 완벽함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백 번 넘어져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게임에서 패배할 때는 포기할 때이다.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한다면 결국엔 승자가 될 수 있다. 본문에 이런 부분이 있다.

누 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고, 변명을 용납하지 않고, 그리고 무언가를 반복하라고 말하는 건 잔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비록 상대방의 분노를 살지라도, 상대방의 실수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엘리트 마인드> pg. 155

자신의 부하 직원이 실패를 하면, 그저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배울 수 있게끔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발전을 할 수 있기 때문. 



경쟁은 방해물이 아니라 보조수단 

현 명한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한 층 더 성장한다. 경쟁에 있어서 승자는 하나가 아니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 경쟁을 통해 각자 자기 자신을 성장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영어 Contest 의 라틴어 어원의 뜻은 '함께 약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그게 바로 경쟁이다. 승부의 결과를 걱정하거나, 섣불리 승리를 점치지도 않는다. 그저 승부에 집중하는 것뿐이다. 승부에 몰입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경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마 지막으로 이 책은 어떻게 위대한 인생을 살 것인지에 대해 기가 막히는 명언을 날린다. 위대함이란 가보지 않은 길을 직접 찾아 나설 때에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곳에 가는 것이니 당연히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저앉아서 우는 것이 아니라, 길을 계속해서 개척해 나가는 것. 그게 바로 위대한 인생인 것이다. 위대한 인생을 사는 데엔 '신중하라'라는 말은 최악의 조언이다. 목표를 높게 잡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정신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읽을 땐 사실 꽤 오래전에 본 <위 플래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교수가 드럼 연습을 하는 학생에게 하는 명언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됐어'라는 대사인데 <엘리트 마인드>의 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떠올랐던 것 같다. 

위대


위대한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편안한 길만 걸어오지 않았었나 성찰을 하게 됐다. 정말 내가 최선을 다했던가. PD가 되고 싶다는 목표는 존재하나, 이를 정말 성취하기 위해 인생을 걸 정도로 열심히 해 본 적이 있었는가.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그만하면 됐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진 않았던가 하고 말이다. 정말 삶을 사는 게 지루하고,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 아니면 그저 나 자신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사람은 이 <엘리트 마인드>를 꼭 권해보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당신과 후의 당신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흘러도 내 버킷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는 소원이 하나 있다. 죽기 전엔 꼭 이루어보고 싶은 것. 복권에 당첨되는 것도, 연예인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다름 아닌 바로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 티베트로 훌쩍 떠나서 고고한 히말라야를 오르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다. 히말라야 관련된 책이 없을까 하다가 만난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는 히말라야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인 묘사를 통해 마치 히말라야를 저자와 함께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의 저자 스티븐 얼터는 히말라야가 보이는 인도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강도 여럿이 그의 집에 침입하고, 그와 그의 아내는 수차례 칼로 찔리는 무자비한 폭력을 경험한다. 운 좋게 둘 다 살아남았으나, 그와 그의 아내에겐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트라우마가 남아버렸다. 그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집 앞에서만 보였던 히말라야를 오르기로 결심한다. 오해하지 마시길. 히말라야라고 해서 꼭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게 아니니까. 그는 플래그 힐, 난다 데비, 카일라스, 그리고 반다르 푼치 순례길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오르게 된 히말라야

그는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을 통해 산을 오르는 행위의 가치와 중요성을 계속해서 역설한다. 그는 무신론자인데, 신을 믿는 대신 산을 숭배한다. 



저자는 인간이 산을 올려다보고 그곳에 오르고자 할 때에 삶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때만큼 인간이 인간다워 보일 때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 맞선 싸움에서의 승리는 어떤 승리보다 값지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우선적으로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힘들고, 위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해서 그런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산을 오를 때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 다른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저자는 산을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오른다고 한다. 산에서 발견하는 물건들은 자신이 애초에 소유하지 않았던 물건이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떠오르지 않았을 생각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산에 오름으로써 '다르샨'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바로 경외의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서 그 존재가 내려주는 축복을 뜻한다. 그리고 꼭 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산 주위를 걷는 것만으로도 산의 '다르샨'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걷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가 다른 평범한 에세이집과 다른 점은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서만 기록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히말라야의 난다 데비, 카일라스 산을 둘러싼 각종 티베트 전설과 이야기를 같이 서술해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난다 데비 꼭대기에 CIA가 중국 미사일 탄도를 감지하기 위한 감지기를 설치하려고 했다는 사실 등은 독자의 호기심을 돋운다. 


또한 히말라야의 아름다움만 담고 있지 않다. 저자의 고된 순례길을 묘사하면서 아름다운 히말라야 이면에 있는 티베트 사회의 어두운 면도 담고 있다. 중국과의 소유권 분쟁, 티베트 사람들의 가난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티베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순례길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보며 '인간은 무엇을 숭상하건 그것을 더럽히고 모독한다'라며 인간의 자기모순을 비판한다. 나 역시 그저 히말라야를 갈 수 있는 불교 사원이 많은 평온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지, 티베트의 어두운 면은 간과했었다.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를 통해 티베트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얻을 수 있었다. 


책 말미에 저자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이유를 종합해서 설명한다.

인간의 의심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산 고유의 영적인 광휘는 고산 빙하에서 은은히 흘러나오고 불멸의 등대처럼 빛난다. 히말라야의 형용 불가한 숭고함은 깊이를 잴 수 없는 존경심과 외경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겸허함과 연민을 품고 산에게 굴복해 산과의 관계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일 때에만 비로소 이 거대한 힘을 오롯이 포용할 수 있다. 얼음과 바위로 이루어진 산의 계단을 오르면 우리가 짊어진 짐도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정상을 향해 쉬지 않고 걸음을 놀리는 인간의 육신과 영혼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크레바스로 아득히 가라앉는다-<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pg.357

몇십 년, 몇 백 년이 지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히말라야. 그 히말라야를 오를 때, 우리 인간은 한 없이 약해진다. 이런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자신의 나약함에 맞서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은 또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저자도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결국 트라우마에 쌓여있던 자기 자신을 극복해낸다. 


<친애하는 히말라야 씨>는 사실 읽는데 쉽진 않았던 책이었다. 나에겐 생소한 티베트 지명들과 히말라야 산맥의 이름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신화는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난 버킷리스트에 히말라야 등반도 있기 때문에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었다.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신화들이 곳곳에 서술되어 있지만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꼭 히말라야가 아니더라도, 산을 오르라고. 그리고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성장하라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고전 중의 고전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인데 T.S 엘리엇은 이 소설을 두고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첫걸음'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사실 예전에 읽었어야 했는데, 이제야 이런 고전을 읽게 된 나 자신이 조금 부끄럽지만 생각 주머니가 더 커진 상태에서 읽은 만큼,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더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왜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인가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유심히 살펴본 것은 이 책의 제목이다. 개츠비가 도대체 누구길래 위대하다고 한 것일까.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기에 제목이 애초부터 '위대한 개츠비'인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중점적으로 바라본 부분은 개츠비의 어떤 점이 그렇게 '위대한' 지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개츠비는 절대로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위대한 개츠비>의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닉이다. 닉은 웨스트 에그로 이사를 갔는데, 옆집에 개츠비라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닉에게는 친구 톰과 톰의 아내, 데이지가 있는데 그들은 이스트 에그(웨스트 에그 옆 동네)에 살고 있다. 알고 보니 개츠비는 5년 전에 데이지와 사랑을 나누었던 사이고, 그녀를 잊지 못해 개츠비는 웨스트 에그로 이사를 와 그녀를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것이다. 매일 성대한 파티를 열고, 그녀를 초대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결국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얻어냈지만, 살인 누명을 쓰고 권총에 살해당한다.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도 나름 본받을만한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의 성취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노력하면 그 사랑을 꼭 성취할 수 있다는 그런 낙관적인 모습을 보인다. 목표를 뚜렷이 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분명 배울 점이 존재한다. 그 무너져가는 '아메리칸드림' 안에서 '사랑 성취'라는 나름 순수한 이상을 품고 살아가는 점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개츠비가 위대하다고 불리는 것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위대하지 않다

개츠비가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돈도 열심히 벌고, 사회적 지위도 쌓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당한 방법으로 사회적 지위를 쌓은 것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을 이용해서 이를 성취했다. 금주령이 내려졌으나 밀주를 공급하고, 조직 폭력배와 친분을 쌓아서 부를 쟁취했다. 또한 사랑하는 여인을 쟁취하기 위해 그녀의 가정을 파탄 냈다. 과연 이런 모습이 정말 개츠비의 위대함인가? 그가 정말 위대하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쌓고, 사랑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그가 사랑을 쟁취했다고 하더라도 데이지에게 정말 떳떳할 수 있는지를 묻고 싶다. 


우리 주변에도 개츠비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저지르고, 대의를 위한 것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 모습. 누군가는 '쿨'하다며 좋아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로선' 납득할 수 없다.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고, 이에 대해 떳떳하기 위해서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개츠비>는 사회 비판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당대 미국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라고 칭송받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개츠비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 미국 사회를 '부정적'으로 그려낸다. 파티를 그렇게 열였으나 정작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돈 때문에 원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모습은 물질적인 삶에 찌들어버린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게 아닐까. <위대한 개츠비>는 사회가 너무나 저급하여 이런 개츠비조차 위대해 보인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채사장 열한 계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채사장의 책은 <시민의 교양>으로 처음 접했었다. 채사장 특유의 부드러운 문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실제로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글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의 또 다른 저서인 <열한 계단>은 그가 쓴 다른 책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가 지금의 그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준 11가지의 불편한 지식이 무엇이었을까 하며 펼쳐본 <열한 계단>. 그의 책은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평소에 품고 있던 '불편한' 물음 

우린 모두 사람들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궁금증을 품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불편한 마음을 묻어두고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채사장은 달랐다. 그는 그런 불편한 사실을 용기 있게 마주했다. 그는 '삶은 무엇일까'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시작해서 문학에서 우주까지 방대한 분야를 넘나들며 그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헤겔의 '정반합'을 사용하여, 기존에 그가 갖고 있던 상식(정)에 대한 의문을 통해 불편한 지식(반)을 만나고 새로운 진리(합)를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이런 헤겔을 넘어서, 니체, 티베트 불교 사상까지 설명하면서 그의 끝없는 질문에 답을 해 나간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반합이 나타나고, 그는 계단 하나하나를 오르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불편한 만큼 성장한다

<열한 계단>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는 기독교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난 항상 기독교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는데, '정말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았어도, 예수의 존재를 믿는다면 정말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은 완벽한 진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라고 한다. 이 말은 나로선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평소에 진리가 무엇인지 궁금해했고, 확실한 답을 찾고 싶었는데, 진리의 존재를 포기하라니. 심히 불편한 말이었다. 하지만 더 읽다 보니 그 말이 어떤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세계의 복잡성을 받아들일 만큼 유연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확실한 근거에 집착하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런 복잡한 세상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은 무리가 아녔을까. 이런 불편한 책을 통해 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채사장과 함께 11 계단을 오르고 난 뒤, 느낀 점은 세상은 참 넓고 복잡하지만 그 중심에는 '나'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없어지면 이 세상을 인지하고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이 세상은 의미 자체를 상실한다. 내가 존재해야지만 의미가 있는 이 세상. 나 자신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예능PD와의 대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PD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PD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직 예능계에서 몇 년간 몸담고 있는 베테랑들이 말하는 실제 예능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나 역시도 예능 PD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인터넷 검색이나, 관련 책들을 통해서 배웠지 실제로 그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라던지, 업무 환경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전직 KBS PD였던 홍경수 교수가 5명의 예능 PD들을 인터뷰 한 내용으로 각색한 책, 《예능 PD와의 대화》는 많은 예능 PD 지망생들에게 예능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베테랑들이 생각하는 '예능'

《예능 PD와의 대화》는 총 5명의 예능 PD들을 인터뷰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PD, <개그콘서트>의 박중민 PD, <아는 형님>과 <썰전>의 여운혁 PD, <1박 2일>의 이명한 PD, 그리고 <힐링 캠프>의 최영인 PD. 이 책은 딱딱하게 서술식으로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 편한 구어체로 작성되어있다. 총 5개의 인터뷰는 각 회사의 CP(Chief Producer), 그 이상을 맡고 있는 예능계의 베테랑들이 예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 



예능은 떡볶이와 김밥이다 

이 말은 <썰전>의 여운혁 PD가 한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예능은 그저 고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간식'같은 것이지 영양가나 건강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게 예능이기 때문에, 예능에서 영양가를 찾을 수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잘못된 기대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즐거운 예능은 현상으로부터 '거리두기'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거리두기'란 그 현상을 객관화함으로써 나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 대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다른 관점을 갖기 


5명의 PD들은 '창의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라는 물음에 대해 공통점으로 '다른 관점을 갖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여기서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시각으로 색다른 면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기존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새로움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이명한 PD의 말을 통해 잘 이해할 수 있다. <1박 2일>의 이명한 PD는 좋은 예능은 보편화된 플랫폼 위에 창의적인 무언가를 더한 것이라고 한다. 하늘 아래 똑같은 것은 없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포맷 위에 새로운 양념을 뿌리면 그것이 바로 창의적인 예능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예능 포맷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새로움을 첨가하려고 노력하는 것. 이게 바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국마다 업무 환경이 다르다 


5명의 PD들이 근무하는 환경이 다 다른만큼, 그들이 설명하는 방송국들의 환경도 다 달랐다. 우선 KBS 같은 경우는 공영 방송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자유로움이 타 방송보단 덜하고, 움직임이 굼뜨다는 평이 있었다. 트렌드를 앞지르는 게 아니라 뒤따라간다는 것이다. MBC는 예능을 기획할 때, 큰 틀을 먼저 짜고 내부적인 요소들은 자유롭게 구성되는 형식을 좋아한다고 한다. SBS는 소규모로 일을 하고, 교양이나 다큐멘터리보단 예능에 더 큰 비중을 둔다. tvN은 KBS와 비슷한 업무 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KBS가 예능을 기획하듯이 처음부터 한 올 한 올 기획한다. 반면 JTBC는 MBC와 비슷한 업무 환경으로 큰 틀이 우선시된다. 


나에게 동기부여를 주는 책

이렇게 실제 방송국에서 근무하는 PD들의 생생한 수기를 읽어보니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며칠 전 나태에 빠진 건지 권태에 빠진 건지 모르겠다며 징징거리는 글을 썼었는데, 《예능 PD와의 대화》를 읽고 나니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은지, 방향성도 생겼다. 


다만 이 책이 살짝 아쉬운 점은, 인터뷰가 언론계 배테랑끼리 이루어지다 보니, 생소한 방송 용어에 대한 해석이 부족했다. 읽는데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몇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해석을 각주로 달아줬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자신이 예능 PD가 되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 생생한 현장을 글로 느끼고 싶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람에겐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머리맡에 놓고 힘들 때마다 들춰보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영성, 신영준 저 《완벽한 공부법》은 현재 대부분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다. 공부를 좋아하는 나이기도 하고, 또 학창 시절을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에서 보낸 만큼 공부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이기도 하다. 남들 다 읽고 극찬하는 《완벽한 공부법》. 뭐 때문에 그렇게 극찬하는지 순전히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공부법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맞는 공부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공부법의 '정석'인 것처럼 제목이 지어졌고, 이게 나름 '도발'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완벽한 공부법》은 내 기대 이하의 책이었다. 남들이 다 좋은 책이라는데 왜 넌 별로라는 거냐 하고 무작정 태클부터 안 걸었으면 좋겠다. 나도 좋게 읽은 책은 좋다고 하고 남들에게 추천을 해주기도 하는 사람이니까. 난 《완벽한 공부법》가 '별로'였던 이유를 크게 2가지 측면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이 이 책에 별로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고 용기를 내서 써보고자 한다.


결국은 '뻔한' 이야기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너 자신을 믿어라', '너의 한계를 파악하고 맞춤 공부를 해라', '기억은 타고난 게 아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정도이다. 읽어보니까 어떤가.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해보던지, 그냥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해봐도 알 수 있는 '뻔한' 동기부여용 멘트들이다. 이 책이 주된 노력을 기울인 점은, 그런 평범한 멘트들에 맞는 연구 자료들이랑 사례들을 상당히 많이 수록했다는 것이다. 사실 난 이런 연구결과만으로 이 책을 100% 신뢰를 할 수가 없다. 몇 가지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마치 '연구 결과가 있으니 우리말이 맞다'라고 하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었다. 실제로 뇌의 발전 분야 연구만 따져봐도, 뇌가 성인이 되어서도 발전을 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 엇갈린 주장들이 학계에 존재한다. 


과연 우리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뻔한 이야기를 정말 몰라서 안 하는 것일까. 노력을 해도 안 되고, 진짜 죽을 만큼 노력을 해도 성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은, 동기부여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보단 일종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너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심어주려는 목적에 동기부여를 상실하고 낙담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위로의 한 마디'를 잊은듯하다. 


또한 고등학생에게 내적 동기를 찾아서 공부하라는 말은 막말로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어떤 고등학생이 공부를 하면서 '이 공부를 통해 내가 한층 더 성장할 거야'라고 생각하겠는가. 결국 다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공부한 것이다.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것은 대학 간판의 유용함, 필요성의 강조일 것이다. 고등학생들에게 그런 식의 공부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고 싶다. 


불필요한 내용의 수록

이 책을 읽다 보면 '외로움이 멍청하게 만든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완벽한 공부법》이 제시하는 해결방안은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그런 '멍청함'을 방지하자는 것인데, 주로 공부법에 대한 내용보다는 인간관계 형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에 치중한다. 인간관계 책이 아닌, 공부법 책인데, 인간관계를 통해 행복을 찾는 내용은 서은국 교수의《행복의 기원》 을 읽는 것 같았다. 애초부터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이 굳이 인간관계를 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는 운동을 통해, 누구는 독서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외로움이 사람을 멍청하게 만든다면 굳이 인간관계에 그 내용을 집중시킬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영어 공부에 대한 내용은 더더욱 불필요했다. 내 지나친 기대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완벽한 공부법》이 전반적인 공부법에 대해 다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 공부가 요즘 중요하다고 하지만 5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영어 공부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정말 불필요했다고 믿는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나에게 《완벽한 공부법》은 뻔한 내용에다가 불필요한 내용을 수록한 책이었던 것이다. 500페이지 넘을 이유가 없는 책이었다. 이렇게 보니까 아주 끔찍한 책처럼 보이는데, 이건 언제까지나 내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난 대치동에서 3년 이상을 보냈고,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치여 살다 보니까 온갖 공부에 관한 명언, 조언들을 질리도록 들었다. 그런 나에게 《완벽한 공부법》은 그저 그런 물릴 대로 물린 말들의 복습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책의 성공의 요인에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효과가 크지 않았나 싶다.. 학창 시절이나 평소에 공부에 관심이 있었고, 잘 해왔던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당신에겐 뻔한 이야기에 불과할 테니. 하지만 공부에 대해 잘 모르고,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말로 심각하게 '비판적인' 서평을 마무리하고 싶다. 

지금까지 꽤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서평들을 썼죠.

 제 서평들을 다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슬프게도... 

그래서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특히 '인간관계'에 대한 책들만 추려서 추천해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책마다 제가 쓴 서평 주소를 덧붙였습니다(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

집단에 억지로 끌려다니면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면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떠겠습니까?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테두리를 지키는 '합리적 개인주의자'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회식자리에 빠져도 마음이 덜 불편할 겁니다.




행복의 기원/서은국

올바른 인간관계를 통해 '행복'을 찾고 싶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책






무식하게 쌓는 인맥이 아니라 '남는' 인맥을 원하는 당신에게


사람을 남기는 관계의 비밀           /김대식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를 배우고

인연을 소중히 남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조마조마한 당신에게


비울수록 가득하네/정목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인간관계에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불교의 '명상적 삶'을 통해 친절히 설명하는 책들입니다. 

종교가 불교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책들.




사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당신에게


불안/알랭 드 보통


불안이 왜 생기는지, 그리고 그런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위트 있는 문체로 알려줍니다. 






그냥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많은 당신에게


나는 왜 걱정이 많을까/데이비드 카보넬

당신이 걱정을 많이 하는 이유부터, 그 걱정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놓은 걱정 극복서







읽은 책들 중에서 인간관계에 도움을 줄 만한 책들은 이 정도입니다. 

모두 별 다섯 개짜리 책들이기 때문에 믿고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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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제인 오스틴이 쓴 세계적인 명작이다. 이제야 이 책을 읽게 된 점이 몹시 부끄러우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늦게나마 이 책을 정독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오늘 완독을 하게 됐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오만'과 '편견' 극복 후 쟁취한 사랑 스토리는 명작이 되기엔 충분한 재미를 갖고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오만과 편견>의 배경이 된 1800년대 초반 영국이나 지금 우리 사회나 오만과 편견이 팽배하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당신의 오만과 편견, 안녕하십니까?


<오만과 편견>에 따르면 오만이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허영심'과는 거리가 있다고 한다. 허영심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지만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겸손함'의 표현이다. 그러나 오만은 진실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위치에 존재하여 그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편견은 자신의 판단이나, 남의 일방적인 견해를 잣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태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때로는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때로는 열등하다고 자기 자신을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오만과 편견인 것이다. 남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그런 오만함, 그리고 열등하다고 생각할 때 갖는 사회에 대한 '편견'. 과연 우린 어떤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학벌의 오만과 편견

대한민국은 오랜 기간 동안 학벌을 중요시하던 사회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의 우위로 학급에서도 어울리는 친구들이 구분되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다른 대학을 비하하기 바쁘다. 'OO대 VS XX대'라는 글만 검색해봐도 상대방 학교를 '디스'하고 자신의 학교를 옹호하는 그런 덧글들이 넘처난다. 일반적인 좋은 대학교,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다니는 사람은 자신이 '지방대'를 다니는 사람보다 실질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그런 '오만'에 빠진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대학교, '지방대'를 다니는 사람은 그런 명문대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긴다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일쑤인 게 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실제로 소개팅이나 미팅에 나가더라도 비슷한 대학 부류끼리 어울리게 된다. 아니, 애초에 비슷한 대학끼리 미팅, 소개팅이 주선된다. '급 낮은' 대학교는 아예 주선조차 안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오만한 태도로 똘똘 뭉친 모습은 흡사 1800년대 영국의 귀족 사교계를 연상시킨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사실 이런 학벌로 인한 오만과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 벗어나기 힘들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나름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다. 어떻게 보면 명문대라는 타이틀을 인정받고 싶고, 그런 타이틀을 이용해서 남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오만과 편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학벌을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는 그런 '오만한 생각'은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면서 버리게 됐다. 


오만과 편견의 극복

한 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토론을 벌인적이 있었다. 주제는 앞서 포스팅했던 '독서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이었다. 나름 내 주장을 잘 정리해서 상대에게 보여줬는데, 그 상대는 논리 정연하고 불편부당한 근거를 통해 내 의견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패배로 부들부들하고 있던 차에 그 사람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염탐해보았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명문대 학생인지 보려고 했던 심산이었던 것이다. 웬걸, 이름도 모르는 지방대생이었다. 난 무의식적으로 날 토론에서 이긴 사람은 나보다 좋은 명문대, 소위 말하는 SKY 대학 출신 사람일 것이라는 그런 오만한 생각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학벌을 통해 상대를 평가하는 그런 태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블로그를 하다 보면 글을 기가 막히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이 다 명문대생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 사람들의 글을 먼저 본 게 아니라, 학벌을 먼저 보았다면 과연 대다수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그 훌륭한 필력을 인정할 수 있었을까? 이 또한 그렇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색안경을 내려놓자

대한민국에 뿌리 박힌 학벌주의.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오만함'과 나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이 우릴 업신여길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는 그런 사회의 도래를 노래했다. 그리고 그 희망찬 노래는 몇 백 년간 이어져내려오고 있다. 이젠 제인 오스틴의 희망에 부응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자신이 끼고 있는 학벌이라는 색안경을 내려놓고 이제 서로를 평등하게 바라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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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신문 기사를 봤는데 미국 베스트셀러 1위가 조지 오웰의 <1984>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읽어봤으나 <1984>은 애석하게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책장에 전시해놓은 지는 3년이 족히 넘었다. 먼지도 쌓이고 이제 '장식품'이 된 <1984>. 나중에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여기까지 온듯싶다. 미국 베스트셀러  1위로 뽑히기까지 한 <1984>. 이제는 읽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4>의 세계관

조지 오웰의 <1984>의 세계는 3대 초강대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가 3대 초강대국들인데, 소설의 주 무대는 오세아니아이다. 오세아니아의 행정부는 또 4부로 나누어져 있다. 평화부는 군사를 관리하고, 애정부는 사상, 풍무 부는 물자, 그리고 진리부는 선전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총책임 지위는 '당'이 가지고 있다. 당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이다. 이는 사상 통제와 과거 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상 통제는 텔레 스크린, 마이크로폰을 나라 곳곳에 설치하여 사람들의 일거수 투족을 감시한다. 혹시 그들이 불순한 사상을 갖거나 의심 가는 행위를 하면 바로 적발되어 애정부로 넘겨져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과거 통제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날조하는 행위이다. 현재 당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불리한 과거는 삭제된다. 사람들은 이중사고를 통해 과거가 날조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진리라고 믿게 된다.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사회에서 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를 증오한다. '빅 브라더 타도'를 몰래 일기장에 적기도 한 외부 당원이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이라는 내부 당원의 음모에 속아 모진 고문을 받고 세뇌를 당한다. 결국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고, 사형을 당하게 된다. 


여기서 당의 지배자들은 권력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여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끝나지 않는 전쟁을 다른 초강대국과 하고(하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사람들을 감시하고 인간성을 빼앗는다. 오죽하면 당의 슬로건이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겠는가. 


조지 오웰은 <1984>를 통해 뭐가 진실인지도 모르고 인간의 본질을 잃어가는 사람들, 권력을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독재자들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윈스턴 스미스가 굴복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조지 오웰의 경고

책을 읽다 보면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라는 문구를 찾을 수 있다.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배운 사실들이 혹시 '진리'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어떤 이데올로기에 세뇌를 당해 진실인 것처럼 믿어온 것일 수도 있다. 과연 진정한 진리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비방하기 전에, 우리나라도 역사를 왜곡해온 것이 있을지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역사뿐만 아니라,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뉴스, 페이스북에서 돌아다니는 토막 기사들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실제로 발표되었던 뉴스 기사가 알고 보니 허위였다든지, 유포자가 날조된 정보를 제보했다던지 등 진실 여부가 불확실한 정보가 우리를 항상 둘러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유식한 것이 무슨 의미일까. 한 번이라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정보만 가득하다면 이는 유식이 아니라 '무식'이다.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모습은 <1984>에서 빅 브라더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당원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조지 오웰은 이런 점을 경고한 것이다.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용한다면 결국 당신은 '무식'해지는 것이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2+2=5'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힐 수 있다고. 틀에 갇힌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한 번이라도 다시 의심해보는 것, 이런 비판적 태도가 넘처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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