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을 해 본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인가?' 라고 물었을 때, 명쾌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평범한 커플의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과정의 철학적인 묘사를 통해 위 물음에 대한 답을 시원하게 제시한다. 알랭 드 보통의 글 솜씨의 한 번, 그의 철학적 해박함에 두 번, 뛰어난 글 솜씨에 세 번 무릎을 쳤다.

우리 둘 다 미신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클로이와 나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던 것, 즉 우리가 서로에게 운명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무수한 사실들-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을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우린 역시 운명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어쩌다 만나서 평범하게 사랑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기다렸던 것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인내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5분만 늦게 나갔어도 이 사람을 못 만났을텐데. 그 날 서점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텐데. 이런 저런 가정을 하며 만남이 운명이었다 확신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공통점을 묶어보려고 노력한다. 다른 환경속에서 살아온 나와는 다른 사람인데 일종의 유대감을 형성하고자 한다.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거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있을 때 둘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을 때 견디기 힘든 어색함의 공기에서 질식할 뻔한 적이 있을 것이다. 뭐라도 말을 해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고 싶고 점수를 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정작 나오는 말들은 회사 면접에서나 나올법한 질문들인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내가 정말 따분한 사람인가? 이렇게 하다가는 내 매력을 어필할 수 없겠다 하며 초조해 하는 모습이 잘 담겨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했다고 이런 것을 받을 자격이 생겼단 말인가?

사랑을 해서 고백을 한다. 그리고 사귀게 된다. 매우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사랑을 일방적으로 주다가 받기 시작하면 드는 불안한 감정이 있다. 내가 뭘 잘했다고 날 사랑해 주는거지? 이렇게 천사같은 사람이 나처럼 멋있지도 않고, 매력도 없어 보이는 사람을 사랑한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불안한 행복이 생기는 것이다. 상대에 비해 내가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떠날거 같은 불안함. 연애 초기엔 다들 경험하는 감정 아닐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다. 네 영혼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준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 물음을 던진다. 한 사람의 분위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것인지, 함께 알고 있는 이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만남의 우연성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지. 만약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면 아름다움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러 물음을 던진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며,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자신'을에 대해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가끔 격렬하게, 또 약간은 까닭 없이 말다툼했던 것은 우리 둘다 서로의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집어넣었다는 것-좀 더 건전한 가계 관리를 목표로 삼기에는 무력한 처지-지나친 사랑이 초래할 수도 잇는 두려움에서 나온 살인이었다. 

커플들은 싸운다. 그런데 왜? 사랑하면 싸우지 말아야하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은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나 할 질문이다. 당연히 싸울 수 있다. 심지어 친구랑 싸울 때보다도 더 격하게 싸우기도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윗 구절로 표현했다. 상대방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일종의 '불안감'으로 인해 더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비합리적인 행위를 한 자신에 대한 일종의 '분노'가 그런 방향으로 표출된다는 것. 완전히 공감이 가진 않았지만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싸움의 이유는 '내가 아무리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도 상대는 나를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알랭 드 보통의 말도 일리 있지만 그가 제시한 연인 간의 싸움의 이유와 내 이유는 사뭇 다르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배려하고 아낀다면 연인 간의 싸움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사랑해다고!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만남이 지속되다보면 한 쪽의 마음이 식기도 한다. 그 식은 마음을 되돌리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삐지기도하고, 질투를 유발해보기도 하고, 때를 써보기도 한다. 대놓고 '나를 사랑해줘!'라고 외치는 부끄러운 일 대신 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도대체 왜이러냐고 묻는다면 정말 이유가 딱 하나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해달라.' 위 구절은 사랑을 잃은 사람의 절박한 마음을 표현한 <왜 난 너를 사랑하는 가>의 대표적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직 나의 죽음을 통해서만 내 사랑의 중요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세상을 향하여 자기 파괴를 보여줄때에만 사람은 치명적일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일깨울 수 있었다.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말 죽을만큼 힘들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죽는다면 그 사람이 후회할까? 라는 극단적인 고민도 하게된다. 이별을 한 주인공의 심리를 잘 드러낸 구절이었다. 

나는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나는 특별하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크게 이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가치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자신의 고통을 '내가 특별해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 고통의 본질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떠나간 그녀의 가치를 절하시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에서 그녀를 그리워만 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단계에 진입한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냈다.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내 사랑 이야기는 얼음과도 같아서 현재라는 손으로 들고오는 동안 차차 녹아내렸다. 

역시 시간이 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서 일상에 적응하고, 슬펐던 과거 사랑을 조금씩 잊어가는 모습을 녹는 얼음, 수축하는 아코디언으로 비유한 알랭 드 보통의 창의력이 빛을 발한 대목이었다. 

대책이 없는 사랑의 고통 때문에 비관적이 된 나는 사랑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결심했다. 

한 번 사랑에 상처받고 나면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된다. 아예 속세를 떠나서 중이 되거나 신부님이 되어 금욕주의자가 되어버리기로 마음먹기도 한다. 하지만 금욕주의자가 아무리 용감하다고 해도 사랑의 순간 앞에서는 겁쟁이가 되고 만다. 결국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이별을 하는 과정을 이렇게 철학적으로 과학적으로 풀어낸 책은 지금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가>가 알랭 드 보통이 25살 때 쓴 처녀작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천재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수많은 사랑,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는 20대에 알랭 드 보통이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을 하고 싶거나, 사랑을 하고 있거나, 이별 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뭘까 궁금하다면 알랭 드 보통이 그 감정을 명쾌하게 해석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뭔지 알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야하는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머리맡에 두고 자주 열어볼 책들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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