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손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 A36, 구의역 1번 스크린 도어부터 15번 스크린 도어까지 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기계 수리 시스템이 전문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ABC메트로는 2037년부터 스크린 도어 수리나 각종 위험한 작업들에는 인공지능 로봇 투입을 원칙으로 삼고있다. 수많은 인명 사고가 발생한 뒤 꺼낸 최후의 카드였다. 나같은 인공지능 로봇들이 2기 1조로 구성되어 스크린 도어 수리를 맡는다. 우린 인간과는 다르게 지칠 걱정도 없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뿐. 


오늘 부여된 임무, 1번 스크린 도어부터 15번 스크린 도어까지 수리하는 것을 수행하기 위해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번 스크린 도어 앞에서 내 파트너 인공지능 로봇을 찾기위해 주위를 탐색했다. 나보다 신형일까 구형일까. 구형이면 임무 완료 시간이 더 늦춰지겠군. 


"너가 내 파트너 로봇이군. 잘 해보자. 내이름은 김덕수야."

"...?"


A37, B28도 아니고 김덕수?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로봇만 쓰기로 규정이 된 곳에 사람이라니. 내 카메라 센서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센서 검사를 해보았지만 나에게 문제는 전혀 없었다. 분명히 인간이다.

 

"놀라지말라구. 요즘 돈 벌이가 궁해서 로봇일도 부업으로 하고 있어. 인공지능 로봇 한 대가 좀 비싸야지. 회사 측도 로봇으로 풀 티오를 채우긴 힘든가봐. 부족한 로봇 티오 메꿀라고 사람을 구하기도 하더라고. 그리고 페이가 좋아." 


인간이 로봇과 같은 속도와 효율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리가 없다. 차라리 A24와 같은 구형중의 구형 로봇이 훨씬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하는 업무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역시나 김덕수는 업무를 시작한지 3시간만에 다리가 풀려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뒤 찾아온 로봇 충전시간. 김덕수는 호주머니에서 차가워보이는 김밥 한 줄을 꺼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로봇일을 인간이 하다니. 너무 무리다. 위험하다."

"10년 전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했어. 그리고 돈도 쥐꼬리만큼 줬었지. 아직은 할만해. 집에 아픈 어머니랑 만삭 아내도 있는 마당에 내가 가릴게 있겠니. 로봇이 내 상황을 이해해줄 순 없겠지만..일이나 하자."


아직 9번 스크린 도어도 못 고친 상황. 이 정도 속도로 일을 한다고 가정하고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니 정확히 7.8시간이 남았다. 이 인간, 버틸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자 우려와는 다르게 김덕수는 능숙하게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김밥 하나 먹고 저런 효율을 낼 수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김덕수는 일하는 중간중간 호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봤는데 무슨 사진인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수리 도중 중요 부품 하나가 선로에 떨어진 것. 열차가 역에 진입하기 까지는 3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곧 있으면 열차가 들어온다. 그냥 포기해라."

"야, 저거 부품 하나가 100만원짜리야. 로봇은 못 물어내니까 나한테 덮어씌울게 분명하다고. 기다려봐 주워올테니까."


선로에 뛰어내린 김덕수는 부품을 주웠다. 그리고 부품을 한 손에 들고 나를 향해 씨익 웃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열차소리. 이제 올라와야 한다.


"뭐하고 있냐. 빨리 올라와라. 열차 온다."

"아, 선로로 뛰어내릴 때 발목이 부러졌나봐. 못 걷겠어."

"위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덕수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3분이 다 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역을 채웠다. 그리고 잠시 뒤, ABC 메트로 관계자로 보이는 덩치 큰 남성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에이씨, 재수 옴 붙었네. 괜히 사람을 써가지고. 청소하기도 귀찮게 이게 뭐야."


메트로 직원이 투덜댄다. 로봇처럼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던 김덕수, 그는 무엇이었을까. 도무지 로봇인 나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머릿속 사전을 검색해보았더니 유사 단어들이 검색됐다. '초인', '슈퍼맨'. 그런 슈퍼맨은 이제 검은 봉투 속에 담겨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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