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나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으며 영혼이 따뜻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이 책은 사실 출판된지 40년이 넘은 책이다. 절판 되었다가 저자가 사망 10년 후, 다시 주목받아서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어린 인디언 혈통 아이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고 체로키 인디언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산 속에서 생활하는 내용을 그린 책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시선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책은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인디언들이 느끼는 그대로 묘사한다. 아이가 산 꼭대기에서 할아버지와 아침을 맞이할 때 산이 깨어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일품'이라 할 수 있다. 계절의 변화도 그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계절의 의미를 어필한다. 봄은 모든 것을 정화시키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라 묘사한다. 태풍이 와서 모든 걸 쓸어버릴 때, 인디언들은 이를 재앙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시작을 위한 정화 작업이라 생각한다. 이런 정화된 대지 위에서 여름이 피어난다. 생명력 넘치는 여름이 끝나고 난 후, 가을이 오는데, 가을은 후회의 계절이다.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이제 생명이 지고 다음 생을 기다린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는 피폐했던 현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자부한다. 

주인공 '작은 나무'는 순수함 그 자체다.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 그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그래서 읽다보면 우리는 알지만 정작 주인공은 이해 못하는 어른들의 행동들이 있다. 예를 들면 책 말미에는 작은 나무가 고아원으로 가게 됐다. 왜냐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후견인으로서 자격이 미달됐다는 법적 판단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가기 3일전 할머니가 도토리 빵을 만드는 도토리 가루에 설탕을 실수로 자주 엎질렀다고 주인공은 생각했다. 하지만 우린 할머니가 손자와 헤어지기 전 맛있는 간식을 많이 해주고 싶어서 평소에 많이 넣지 않던 설탕을 많이 넣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드리는 체로키 인디언의 모습은 '위엄'있었다. 작은 나무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죽기 전,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내 삶은 훌륭했다고 마지막 말을 남긴다. 죽기전에는 보통 공포를 느끼고 손자를 두고간다는 사실에 오열할 법도 하지만, 죽어도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며 손자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는 체로키 인디언들의 숭고함은 나에게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자연으로부터 가져갈 양만 가져가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체로키 인디언들. 우리가 이들로부터 배울 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자연의 소중함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적이 언제였을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체로키 인디언들은 자연으로부터 너무나도 큰 행복을 얻는다.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고 자연을 이해한다. 현대인들, 책에서는 '정치인'들은 자연을 이용해먹을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함께한다면 그만큼 자연도 우리에게 베풀어줄 것이라는 인디언의 지혜를 이 책은 우리에게 주고 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덕분에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았다. 무작정 많이 사냥하고, 채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양만 얻어가 생명의 순환고리를 유지시키는 일이 중요한 것이었다. 체로키 인디언들만큼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건 나에겐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평소에 신경쓰지 않았던 자연에 앞으로는 훨씬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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