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게 된 영화 <노예 12년>.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영화였다.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각색상, 여우조연상 수상작에다가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흑인 감독의 흑인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는 어마어마한 영화. 지금까지 흑인 노예 관련된 영화는 꽤 봤으나 이 정도로 극찬을 받았던 영화를 본 적은 없었다. 과연 어떤 점이 이 영화를 다른 영화들과 구분 짓는 것일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134분 동안 계속 고민했다. 


 <노예 12년>은 뉴욕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있던 바이올린 연주가 솔로몬 노섭이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가면서 시작된다. 극심한 노예제도로 악명이 높았던 루이지애나로 팔려가게 되고, 이름을 잃고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12년간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는 윌리엄 포드 그리고 에드윈 엡스라는 두 명의 주인을 만난다. 첫 주인은 윌리엄 포드였는데, 솔로몬이 노예 관리인과 싸우게 되어 에드윈 엡스한테 팔려가게 된 것이다.  


에드윈 엡스와 솔로먼 노섭


윌리엄 포드는 흑인에 대한 동정심이 조금이라도 있던 사람이었지만 에드윈 엡스는 흑인을 막대하기로 유명한 농장주였다. 목화 수확량이 평균에 못 미치면 채찍질을 마다하지 않는 등 포악한 모습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I Don't Wanna Survive. I Wanna Live

이 문장이 그 당시 불합리하게 팔려 다니는 흑인 노예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솔로몬이 납치를 당해 배로 팔려가고 있을 때 한 말이다.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고. 흑인 노예들은 글을 쓸 줄 알거나,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백인들에게 표적이 되기 일쑤였다. 그저 백인들에게 흑인 노예들은 시키는 막노동만 조용히 해야하는 재산에 불과했다. 글을 쓸 줄 아는 흑인들은 불복종의 소지가 존재한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래서 노예들은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능력이 뭔지 등등 자신에 대해서는 모조리 숨기고 살아가야 했다. 이런 삶은 그들에겐 사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하는 것이지, 그들의 삶 자체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 이름도 바뀌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알리지 못하면서 사는 인생.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미 없는 삶을 견디면서 '살아남는' 흑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노예 12년>을 통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솔로몬 노섭과 다른 흑인 노예들


흑인 노예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이런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노예 생활을 끝까지 견뎌내고 자유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맞서 싸우거나. 맞서 싸우기로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삶이 의미가 없으니 노예로 혹사를 당하다가 죽느니, 싸워보고 죽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욕정을 갖고 찾아오든, 채찍을 갖고 찾아오든 마음 편히 먹으렴. 
언젠가 주님이 심판하실 날이 온다

 솔로몬은 맞서 싸우기보단 끝까지 견디는 쪽을 선택했다.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었고, 언젠가는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끝까지 견뎌낸다. 사실 대다수의 흑인 노예들이 솔로몬 같은 생각을 갖고 버텨낸다.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종교'였다. 이런 끔찍한 삶을 견뎌낸다면 언젠가는 백인들이 천벌을 받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런 천벌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고. 



억울한 노예 제도도, 정당한 노예 제도도 없다

<노예 12년>은 솔로몬이 12년간의 '억울한' 노예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쓴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사실 억울한 노예 생활도, 정당한 노예 생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노예 제도는 없어져야 할 폐단에 불과했다. 솔로몬은 납치를 당하기 전까지는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뉴욕에서 누린다. 다른 흑인들은 그 당시에도 노예 제도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자유인' 이니까 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오히려 자신은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납치를 당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한 말이, '나는 자유인이니까 나를 가둬둘 권리가 없소.'라는 것이다. 자유인이든 자유인이 아니든 노예가 될 이유는 없다.  12년간의 노예 생활 후, 솔로몬 노섭은 달라졌다. 노예 해방 전선에 뛰어든 후, 각종 집필 활동, 구조 활동에 앞장서게 됐다. 더 이상 '나만 아니면 된다' 식의 솔로몬이 아니었다. 


솔로몬 노섭이 쓴 <노예 12년> 


우린 어떠한가. 우리도 솔로몬 노섭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모습을 보고도 '내가 아니니까' 하며 지나친 경우,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조리한 사회가 언제 나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 솔로몬도 자신이 노예로 납치돼서 팔려갈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우리도 당하기 전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는 이유가 일종의 '방관자 효과' 때문일 수도 있다. 

방관자 효과(傍觀者效果, 영어: bystander effect) 또는 제노비스 신드롬(영어: Genovese syndrome)은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매해 학교 폭력 피해자가 나타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불쌍하네' 정도의 반응만 보인 후, 잊고 살아간다. 결국 소수의 사람들만 노력하지 다수는 그저 '내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는 것이다.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부조리함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노예 12년>은 1840년대 당시 미국의 극악무도한 노예제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말자는 메시지 또한 전달한다. 꼭 그런 사회의 어두운 면에 피해를 봐야 움직이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꿔나가자는 의지가 담겨있는 <노예 12년>은 보고 난 후, 한 참 동안 나에게 여운을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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