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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자 집을 나섰다. 선택한 영화는 <조작된 도시>. <웰컴 투 동막골> 감독으로 알려진 박광현 감독이 12년 만에 국내 복귀작을 냈다.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THE K2>에 출연했던 지창욱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이 내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빵빵한 조연들. 안재홍, 김민교, 이하늬, 김상호가 출연하는 <조작된 도시>는 영화 시작하기 전부터 내 기대치를 높여줬다. 이런 이름 있는 조연들을 데리고  어떻게 영화 스토리 라인이 어떻게 진행될지.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신났지만 개연성은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인 '킬링 타임' 영화였다. 


<조작된 도시>의 주 내용은 억울하게 강간 살인 누명을 쓴 권유(지창욱 역)의 결백을 밝혀내기 위해 권유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팀을 꾸려서 그의 결백함을 증명하는 증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권유가 즐겨하던 게임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FPS(First Person Shooting) 게임인데, 권유의 팀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듯, '권유 결백 증명 미션'을 수행한다. 


이런 과정에서 <조작된 도시>는 주체할 수 없는 '흥'을 발산한다. 


조연들의 감초 역할

워낙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한 조연들이 출연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각 조연들의 색깔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 드라마 <도깨비>의 귀신 역할로 나왔던 박경혜가 가장 좋은 예인데, 맛깔난 욕설 연기는 관람객들에게 웃음을 유도하는 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코믹 연기자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김민교도 자신의 특색을 어김없이 나타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그밖에 <연애의 발견>에서 솔이 역할을 했던 김슬기도 잠깐이나마 나와서 코믹 연기를 보여줬다. 관람객들은 아는 배우가 보일 때마다 '어 저 배우도 여기 출연했네?' 하며 분명 반가움을 느꼈을 것이다.


대한민국식 유쾌한(?) 추격전

액션 영화에서 빼려야 뺄 수 없는 필수 장면, 추격신이 <조작된 도시>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서울 한복판을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주인공들이 도망칠 때 타는 차는 다름 아닌 마티즈. 평범한 SUV도 아닌, 낡고 낡은 마티즈를 개조하여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은 참신함과 박광현 감독의 특유의 유쾌함이 담겨있었다 생각한다. 


지창욱의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

역시 지창욱인가. <The K2>에서 보여줬던 멋진 액션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영화 도입부에서 볼 수 있는 지창욱의 '원맨쇼'는 지창욱의 역대급 액션 연기가 아녔을까 생각한다. 도입부를 넘어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지창욱의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런 흥 넘치는 부분만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꽤 만족스러운 영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난 영화를 볼 땐, '프로 불편러'로 돌변하는 쓸데없는 습관이 있다. 모순점을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하고, 대사의 의미를 곱씹어 본다. 이 세상엔 나와 같은 '프로 불편러'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조작된 도시>를 디스 해보기로 한다. 


영화의 개관적인 느낌은, 너무 신이 나서 개연성을 날려버린 그런 느낌이다. 그냥 재미로만 만든 영환데 무슨 개연성을 따지느냐고 불평할 수 있지만, 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무리 허구 영화라지만 개연성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 치곤 '과도한 의리'

권유가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을 때, 그와 같이 게임을 한 사람들 중 한 명인 여울(심은경 역)은 뛰어난 해킹 능력으로 그가 누명을 썼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알린다. 권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뭉친 그들은 직장도 다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고작 게임을 같이 했다는 이유로 생사가 걸린 미션에 다 같이 뛰어드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영화를 처음부터 보지 않고 중간부터 본다면 이들이 게임에서 만난 사이라는 것은 아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현실성 없는 주인공들의 능력

권유는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였다가 퇴출당하고 백수가 되어 피시방을 전전하던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혼자서 교도소 수감자들을 상대하고 마티즈로 화려한 추격전을 펼치는 모습은 흡사 <The K2>의 김제하를 보는 듯했다. 빛이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소리만으로 놀라운 액션을 보여주는 권유의 모습은 전직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가 아니라,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의 모습이다. 권유뿐만 아니라, 여울(심은경)의 어나니머스도 울고 갈 해킹 능력, 용도사(김민교)의 드론 제작 능력은 평범한 직장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치곤 과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들이 모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허무한 결말 

결국 필요한 것은 권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인데, 권유는 이 자료를 얻기 위해 이 모든 사건의 배후, 민 천상 국선 변호사(오정세 역)를 찾아간다. 그를 흡씬 두들겨 패고, 자료를 빼기 위해 USB를 꽂는다. 대놓고 말이다. 하지만 멍청한 민천상 변호사는 USB가 꽂혀있다는 사실을 그만 까먹은 모양이다. 그가 나중에 기억했을 땐 이미 늦었고, 권유의 결백 자료와 민천상이 배후에 있었다는 증거는 언론을 통해 다 까발려지고 만다. 그렇게 화려한 액션씬, 추격전을 했지만 결국 사건 종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민 천상 변호사의 '건망증'이었다. 그가 까먹지만 않았어도 결말은 달랐을 텐데. 


긴장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유명한 조연들이 나오다 보니까 그들의 주체할 수 없는 '끼'가 극 중 몰입에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있었다. 분명히 긴박하고 심장이 쫄깃쫄깃한 장면이어야 하는데, 김민교의 오버스러운 코믹 연기는 극 중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이 장면이 긴박한 장면인지, 아니면 코믹 장면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있었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긴장감을 최대로, 여유로울 수 있는 장면에서는 적당한 유머를 구분해서 보여주는 게 관객들이 잘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 보고 나니까 기억나는 거라고는 지창욱이 마티즈를 타고 추격전을 펼치는 장면 정도였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몇몇 있다. '왜 굳이?'라고 따지고 싶은 장면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왜 권유의 어머니를 죽여야만 했는지. 왜 권유가 누명을 쓰고 고통받는 이유가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인지. '프로 불편러'인 나는 영화를 보고 불편한 마음이 컸지만, 신나고 액션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딱 좋은, '흥 넘치는' 액션 영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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