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고 그 자리에서 꽃이 피어나고 있다. 바람이 날카로워 창문을 꼭꼭 닫아놓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창문을 활짝 열고 봄 내음을 만끽한다. 추운 겨울 내내 찡그리느라고 주름살이 잡혔던 사람들의 미간엔 이젠 기분 좋은 분위기가 담겨있다. 겨울 내내 미뤄왔던 약속들을 이젠 다시 잡고 있는 것일까, 너도나도 스마트폰 달력을 켜놓는 모습. 이런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지만 역시 난 안 되겠다. 봄이 안 왔으면. 그냥 영원히 얼음이 녹지 않았으면 하고 심술궂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봄이 그냥 안 왔으면 좋겠다



난 어렸을 적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었다. 밖에 쉽게 나갈 수 없는 신체적 장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내 심리적 상태가 관건이었다. 밖에 나갔을 때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 투병한 벽 안에 갇혀있는 느낌. 평범한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난 뒤, 난 지금까지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계절이 바뀌는 건 창밖을 통해서, 가끔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옷차림을 통해서만 느낄 뿐이었다. 난 항상 외로웠다. 


하지만 그나마 덜 외로운 계절이 있다. 이는 바로 겨울. 혹한의 날씨에 밖에 돌아다닐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실내 활동을 주로 할 뿐. 겨울엔 유독 날 방문해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내 외로움을 덜어주는 참 고마운 친구들이다. 대부분은 날씨가 춥다고,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하며 찾아왔다. 나도 날씨가 참 안 좋다고, 너무 추운 것 같다고 짐짓 공감해주지만, 입가에 퍼지는 미소를 몰래 숨기느라 애를 썼다. 하지만 이런 친구들도 겨울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벚꽃 놀이를 갈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 하는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워 종종 눈물을 훔치곤 했다.  

 

나에겐 가장 외로운 계절, 봄

그런 겨울이 이제 끝나고 있다. 봄이 찾아오면 모두가 따뜻해한다. 몸도 따뜻하고 마음도 따뜻한 계절이라고 칭송받는 '생명의 봄.' 내 마음은 이와 반대로 점점 더 썰렁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봄이 안 오냐고 불평을 한다. 3월이 된 지 꽤 됐는데, 아직도 꽃샘추위냐고. 빨리 나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며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하지만 나에겐 봄이 너무 빨리 다가오고 있다. 최대한 천천히 와주었으면. 나에겐 가장 외로운 계절, 봄 말이다. 언젠간 나 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일반 사람들처럼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한다.  


봄이 오는 모습을 몸이 불편한 분들의 시각으로 해석해봤습니다. 봄이 왔지만 봄을 느끼기 위해 밖으로 쉽사리 나갈 수 없는 분들. 그분들이 봄의 생명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끔 사회가 도와주는, 사람들이 장애인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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