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15번째 보았다. 이젠 재미로 보는 게 아니라, 노스탤지어에 빠져보는 해리포터. 


난 해리포터를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했다. 처음 해리포터를 접했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발견한 엄마가 사놓으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11살 때에는 호그와트에서 입학 통지서가 날아오진 않을까 하고 기대감에 우편함을 확인하곤 했다. 나무젓가락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동생과 마법 대결 놀이를 하곤 했던 철없던 초등학생. 그 철없는 초등학생이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도 해리포터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다. 해리포터 영화뿐만 아니라 책도, 그것도 '원서'로 수십 번은 읽었다. 해리포터 '본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번역본은 과감히 책장에서 치웠다. 일본 여행을 가서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해리포터 구역을 제일 먼저 방문했다. 그리고 구매한 기념품은 '호그와트 비밀지도'와 마법 지팡이 모형. 


하도 해리포터 영화를 보다 보니까 이제 소리만 들어도 어떤 장면인지 예측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대학교 1학년 때, 라섹을 했었다. 라섹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1주일간 책도 못 읽고, 스마트폰도 보지 못한다. 초점을 맞추지 말라나.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소리로만 듣는 것이었다. 소리만 듣고도 이해가 되는 영화는 나에게 해리포터가 유일했다. 1주일간 눈을 감고 해리포터 전편의 소리만 들었다.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 해리가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어떤 장면인지 마법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해리포터를 좋아했을까. 다른 아이들이 좋아 죽는 애니메이션보다 좋아했던 게 해리포터 시리즈였다. 아마 어린 나이에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난 학원을 7개씩 다닌, 소위 말하는 범생 이중에 범생이였다. 수학학원부터 시작해서 태권도, 바둑학원까지. 가기 싫다고 떼를 쓰진 않았으나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이런 틀에 박힌 생활을 탈출하고 싶었던 철없던 초등학생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집을 탈출하고,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해리의 모습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 게 아닐까? 


다 큰 성인이 된 지금도 해리포터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아직 현실을 도피해 호그스미드에서 버터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 심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는 남아있는 거 같다. 내가 해리포터가 너무나 보고 싶을 땐, 마치 먼 외국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향수병에 걸린 것만 같은 느낌이다. 몇 번을 다시 봐도 해리, 론, 헤르미온느는 날 호그와트에서 반겨준다. 덤블도어 교수는 인자한 할아버지의 미소로 날 바라본다.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호그와트.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이런 훌륭한 도피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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